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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 청 각

징 청 각

  • 구분 유형문화재
◈지정종별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 (1982. 3. 4 지정)
◈보관장소 : 중구 포정동 21 (경상감영공원)

징청각은 선화당 뒷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상감영의 관찰사 처소로 쓰이던 건물이다. 1601년(선조 34) 경상감영을 대구로 옮겨올 때 선화당·응향당(凝香堂) 등 여러 채의 건물과 함께 지어졌다. 그후 선화당과 함께 여러 차례의 화재로 불탔던 것을 1807년(순조 7)에 관찰사 겸 부사 윤광안이 있을 때 중건하였으며 1970년 중앙공원 조성 때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건물은 정면 8칸, 측면 4칸으로 정면과 측면칸 모두 협칸으로 갈수록 칸살이 좁다. 바닥에는 장마루를 깔고 개방된 네면에 난간을 돌려 누마루 처럼 꾸몄다. 구조는 겹처마 팔작지붕의 익공계로 네모의 화강석 초석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주두와 앙서, 수서로 장식한 이익공계이다. 건물의 가구는 2고주 7량가로 선화당과 같은 구조이며, 천장은 내진주로 둘러 쌓인 부분은 우물반자를 그리고 그 바깥은 연등천장으로꾸몄다.

이 건물은 건축된 이후 많이 개조된 것으로 보이나, 선화당과 함께 대구에 남아 있는 관아 건물로 희소하여 건축적 가치가 매우 높다
고 산 농 악

고 산 농 악

  • 구분 무형문화재
♥지정종별 :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 (1984. 7. 25 지정)
♥전 승 지 : 수성구 내환동
♥기능보유자 : 정창화 (남, 상쇠)

고산농악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내환동에서 자생하여 전승되는 농악이다. 이 지역은 원래 경산군 고산면 내환동이었다. 내환동은 고려시대부터 곡기(谷己) 라 불려 온 옛 서울나들에 위치하는 전형적인 자연촌락으로 농촌이며 각성(各姓)마을이다.
고산농악은 마을 개척시대부터 전승되어 오면서 농악 원래의 소박함을 그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내환동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동제(상당, 중당, 하당)를 지내는데, 당굿으로 농악을 잡혔으며 동제의 왕복길과 동제가 끝난 뒤에도 풍물을 쳤다 한다.
내환동 농악의 특징은 한 자연촌락의 노인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고유의 전통적인 맛을 잃지 않고 마을 단위의 향토색 짙은 농악형태를 유지하는 점이다. 연행과정에서 닭쫓기놀이는 이 마을에만 있는 독특한 놀이마당이다.
연행과정은 덩덕궁이(원진) → 둘석(진굿) → 춤굿(판굿) → 닭쫓기 → 방석말이(오방굿) → 모내기굿 → 법고놀이의 순이다.
고산농악은 상쇠 장이만(남, 사망)에 의하여 쇠가락이 전승 보존되어 왔다. 장이만의 사망 이후 고산농악의 쇠가락은 정창화에 의하여 전승되어 왔다. 그는 고산농악의 전승지 내환동 태생으로 20여세부터 장이만에게 쇠가락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오래동안 고산농악의 종쇠로 활동해 온 정창화는 장이만이 사망한 이후 상쇠로서 지금까지 고산농악의 전승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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