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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사지

부인사지

  • 구분 기념물
♠지정종별 :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3호 (1988. 5. 30 지정)
♠보관장소 : 동구 신무동 356

팔공산 순환도로를 통해 동화사에서 파계사 가는 길목의 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는 부인사는 7세기경 창건되었다 한다. 경내에 신라 선덕여왕의 영정을 모시고 해마다 사찰에서 선덕여왕 숭모제를 지내고 있으며, 부인이란 선덕여왕을 칭하여 불렀던 호칭이라는 연구 결과 등으로 미루어 이 절이 선덕여왕의 원당으로 전래되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문헌자료에 따르면 부인사는 1232년(고려 고종 19) 몽고침입 때 소실된 바 있는 고려의 호국정신과 민족문화의 상징인 초조대장경판을 보관했던 사찰이며, 또 고려 무신정권에 항거해서 봉기한 승려의 본거지였다. 지금 경작지로 변해버린 옛 부인사의 사역에는 축대, 초석, 당간지주 등의 많은 석조물이 있고 또 경내에는 석탑, 석등, 배례석 등이 남아 있어 옛날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또 부인사에서 남서쪽 약 300m 떨어진 나직한 구릉지대에 또하나의 사지가 있다. 여기에는 나말여초의 주초석 석탑 등의 많은 석재가 있고 축대석도 곳곳에 남아 있다. 부인사 경내의 석조물과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부인사에 속했던 암자로 추정되며 부인사의 당시 모습을 잘 보여 준다 할 수 있다.
영영 축성비

영영 축성비

  • 구분 유형문화재
◈지정종별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 (1982. 3. 4 지정)
◈보관장소 : 수성구 만촌동 산83-5 (망우공원)

이 비는 1736년(영조 12)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였던 민응수(1684∼1750)가 임진왜란으로 허물어 졌던 대구 읍성(당시 土城)을 석성으로 축성한 후 세운 것으로, 당시 읍성의 규모와 작업진척 상황을 상세히 적고 있다. 원래는 남문 밖 관덕정 터에 세워졌으나, 1906년 박중양이 대구읍성을 헐면서 현재의 대구백화점 부근으로 옮겼다. 이 비석은 1932년 향교로 이전하여 보관되어 오다가 1980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보존하게 되었다. 비신은 규형 오석으로, 높이 259㎝, 폭 90㎝, 두께 44㎝이다. 비개는 원래 없으며 비부는 장방형 황백색 화강암으로 높이 15㎝, 폭 156㎝, 두께 102㎝이다.

축성비에 의하면 1736년 1월 8일에 채석을 시작하여 12일에 성터를 닦고 경상감영의 석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 해 4월 25일에 체성이 이루어지고 6월 6일에 여첩이 완성되었다. 4개의 정문은 쌍홍문으로 건축하였고, 손방(동남간)과 건방(서북간)에 암문을 두었다. 공사 기간은 6개월이었으며 동원된 인원은 78,534명에 달했다고 한다. 성의 둘레는 총 2,124步·여첩이 819첩·성의 높이는 서남이 18척·남북이 17척·후축광이 7보·높이가 3급(級)이다. 또한 성을 쌓고 난 뒤 수성을 위하여 양향·전포·기기 등을 비치한 수성창을 건립하여 불의의 사태와 훗날의 수성에 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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