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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장군 유적

신숭겸장군 유적

  • 구분 기념물
♠지정종별 :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 (1982. 3. 4 지정)
♠보관장소 : 동구 지묘동 526일대

이 곳은 고려 태조때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곳이다. 신숭겸 장군은 태봉의 기장으로 있으면서 배현경 등과 궁예를 내몰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였다. 장군은 그 뒤에 대장군이 되어 927년(태조 10년)에 신라를 위기에서 구하려고 태조 왕건과 함께 후백제군을 상대로 대구 공산(公山)에서 싸웠으나 후백제군에게 대패하였다. 이 싸움에서 장군은 왕건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왕으로 변장하여 김락(金樂) 장군과 같이 싸우다 왕건을 대신해서 전사하였으며, 이틈을 탄 왕건은 장졸로 변장하여 적의 포위망을 뚫고 단신 탈출한다.
태조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광해주(지금의 춘천)에 예장하고, 전사한 자리인 이곳에는 지묘사를 세워 명복을 빌게 하는 한편 일품전지 삼백묘를 하사하여 이를 수호하게 하였다. 그후 지묘사는 고려 멸망과 더불어 폐사되었으나 1607년(조선 선조 40)에 경상도 관찰사 류영순이 폐사된 지묘사 자리에 표충사(表忠祠), 표충단, 충열비를 건립하여 공의 혼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였다.
지금도 표충사 앞쪽 동화사와 파계사로 갈라지는 고개를 왕건의 정예군이 크게 패하였던 고개라 하여 파군(破軍)재라 부르고, 파군재 남쪽 산기슭의 봉무정 앞에 있는 큼직한 바위는 왕건이 탈출하여 잠시 앉아 쉬었다고 해서 독좌(獨坐)암이라 부르며 표충사의 뒷 산은 왕산(王山)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지명이외에도 대구에는 이 싸움에서 유래된 안심, 해안, 반야월 등의 많은 지명이 남아 있어 당시 격전지의 자취를 잘 보여주고 있다
건들바위

건들바위

  • 구분 기념물
♠지정종별 :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2호 (1982. 6. 29 지정)
♠보관장소 : 중구 대봉2동 735-28

건들바위란 이름의 유래는 잘 알 수 없으나 예로부터 그 모양이 갓 쓴 노인 같다고 해서 삿갓바위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200여년 전에는 건들바위 앞으로 맑고 깊은 냇물이 흘러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에서 낚시를 하며 풍류를 즐겼던 경치 좋은 명소의 하나로 서거정 선생이 노래한 대구10경중 笠巖釣魚의 현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 정조 때 시가지 일대의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하여 제방을 만들고 물줄기를 현재의 신천으로 돌리면서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 건들바위에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몰려와 치성을 드렸으며, 특히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인들이 치성을 올리면 아들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초사흘 또는 초이레가 되면 치성을 드리는 부인들이 많아 촛불을 켤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건들바위는 앞으로 도로가 개설되어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으나, 건들바위 주변을 조경하여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시민들에게 시원한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는 한편 주변에 폭포시설과 물이 흐르던 신천의 옛 모습을 재현하여 옛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하였다.
笠巖釣魚 烟雨空惃澤國秋 垂綸獨坐思悠悠 纖鱗餌下知多少 不釣金鰲釣不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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