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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

불로동 고분군

  • 구분 사적
●지정종별 : 사적 제262호 (1978. 6. 23 지정)

●소재지 : 동구 불로동 335일대

불로동 고분군은 금호강유역에 접하고 있으며, 불로동에서 팔공산으로 가는 도로에서 경부고속도로와 만나는 지점의 동쪽 구릉에 분포하고 있다.

총 211기의 대소고분들이 밀집되어 있는 이 곳은 1938년과 1963년 두차례에 걸쳐 몇기만 표본 발굴조사한 결과 내부구조는 냇돌 또는 깬돌로 사방 벽을 쌓고 큼직한 판석으로 뚜껑을 덮은 장방형의 수혈식 석곽으로 금동제의 장신구와 철제무기, 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이들 출토유물로 보아서는 대구지역의 타 고분들 특히 비산동, 내당동 등의 고분군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고분의 입지가 구릉이라는 점과 내부가 할석으로 축조되었고, 석곽이 좁고 긴 점 등이 이들과 유사하여 같은 계통임을 짐작케 한다. 전체 고분군의 축조시기는 대략 5∼6세기에 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불로동 고분군은 대구 일대에 현존하는 고분들 중 외형적인 형태를 가장 잘 갖추고 있고 좁은 지역에 많은 고분들이 밀집해 있는 점 등에서 고대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고, 대구분지내에서 비슷한 권력집단이 내당동, 비산동, 불로동 등 곳곳에 할거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자료로 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대구 계산동 성당

대구 계산동 성당

  • 구분 사적
●지정종별 : 사적 제290호 (1981. 9. 25 지정)

●소재지 : 중구 계산동2가 71 (계산성당)

이 성당은 처음에는 한식기와집의 십자형성당으로 세워졌으나 이듬해인 1900년에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되어 버렸다. 이에 로베르 신부는 서상돈·김종학·정규옥 등의 협력으로 1902년 소실된 장소에 다시 고딕식 벽돌건물로 준공하여 1903년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건립된 고딕양식의 성당으로는 서울, 평양에 이어 세번째이고, 영남지방에서는 최초의 것이었다. 그후 1911년 천주교 대구교구가 설정되어 주교좌성당이 되자 성당을 증축하여 종각을 2배로 높이고 성당 뒤쪽을 확장하여 1918년 12월 비로소 현재의 성당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당시 성당증축의 시공자는 중국인 기술자인 강의관이라 한다.

평면은 수랑(transept-평면이 십자형인 성당의 몸채 좌우쪽에 잇대어 붙인 날개부분.)을 가진 라틴십자형으로, 서쪽면에 세운 두개의 종탑부에는 8각의 높은 탑을 세우고, 박공부분에는 아름다운 장미창을 두었다. 내부 제대 뒤로는 5각형의 평면을 이룬 반원 아치 아케이드가 5각형의 후진(apes)과 연결되어 있다. 또 제대 뒤 위쪽 중앙에는 루르드 성모동굴을 입체적으로 구성하였다. 이 성당은 대구지방에 천주교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의 고충을 상징하는 건조물이라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서양의 건축양식이 대구에 도입된 표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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