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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산 농 악

고 산 농 악

  • 구분 무형문화재
♥지정종별 :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 (1984. 7. 25 지정)
♥전 승 지 : 수성구 내환동
♥기능보유자 : 정창화 (남, 상쇠)

고산농악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내환동에서 자생하여 전승되는 농악이다. 이 지역은 원래 경산군 고산면 내환동이었다. 내환동은 고려시대부터 곡기(谷己) 라 불려 온 옛 서울나들에 위치하는 전형적인 자연촌락으로 농촌이며 각성(各姓)마을이다.
고산농악은 마을 개척시대부터 전승되어 오면서 농악 원래의 소박함을 그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내환동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동제(상당, 중당, 하당)를 지내는데, 당굿으로 농악을 잡혔으며 동제의 왕복길과 동제가 끝난 뒤에도 풍물을 쳤다 한다.
내환동 농악의 특징은 한 자연촌락의 노인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고유의 전통적인 맛을 잃지 않고 마을 단위의 향토색 짙은 농악형태를 유지하는 점이다. 연행과정에서 닭쫓기놀이는 이 마을에만 있는 독특한 놀이마당이다.
연행과정은 덩덕궁이(원진) → 둘석(진굿) → 춤굿(판굿) → 닭쫓기 → 방석말이(오방굿) → 모내기굿 → 법고놀이의 순이다.
고산농악은 상쇠 장이만(남, 사망)에 의하여 쇠가락이 전승 보존되어 왔다. 장이만의 사망 이후 고산농악의 쇠가락은 정창화에 의하여 전승되어 왔다. 그는 고산농악의 전승지 내환동 태생으로 20여세부터 장이만에게 쇠가락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오래동안 고산농악의 종쇠로 활동해 온 정창화는 장이만이 사망한 이후 상쇠로서 지금까지 고산농악의 전승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날 뫼 북 춤

날 뫼 북 춤

  • 구분 무형문화재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 (1984. 7. 25 지정)
◆전 승 지 : 서구 비산동
◆보유자 : 김수배 (남, 설북)


날뫼북춤은 대구의 비산동 일대에서 전승되어온 민속춤으로 경상도 특유의 덧배기 가락에 맞추어 추는 춤이다. 비산농악 등과 그 뿌리를 같이 하지만, 특히 북만을 가지고 추는 북춤으로 발전한 점이 특이하다.
날뫼란 지명은 다음과 같은 전설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아득한 옛날 달내(達川)의 냇가에서 빨래하던 여인이 서쪽 하늘에 요란한 풍악소리를 듣고 바라보니, 하늘에서 산모양의 구름이 날아오고 있었다. 여인이 이를 보고 놀라 "동산이 떠온다"고 비명을 질렀더니, 날아오던 산이 땅에 떨어져 동산이 되었다. 날아온 산이라 하여 날뫼라 부르게 되었고, 한자로는 비산이라 쓰게 되었다. 현재의 비산동 지명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지금의 날뫼 원고개는 달성과 금호강 사이의 넓은 들판을 지나는 서울나들이 길이었다. 옛날 한 원님이 특히 백성들의 추앙을 받았는데, 이 원님이 순직하자 백성들은 이 원님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곳에 무덤을 쓰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특히 제사때는 백성들이 원님의 혼령을 달래기 위하여 북을 울리며 춤을 추었는데, 여기서 유래한 것이 날뫼북춤이라고 전한다.
옷차림은 모두 흰바지저고리에 감색 쾌자를 입고 머리에 흰띠를 두르며 연행과정은 정적궁이 → 자반득이(반직굿) → 엎어빼기 → 다드래기 → 허허굿 → 모듬굿 → 살풀이굿 → 덧배기 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능보유자 김수배는 청도에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비산동에 살았으며 16세때 부터 날뫼북춤을 배워 오늘날까지 그 맥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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