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 로그인

주요서비스 배너

  • 대출조회
  • 대출예약
  • 희망자료신청
성씨
性氏
본관
능성(綾城)
조회수
16583

  시조는 신안주씨 시조 주 잠의 사위세조때의 영의정 구치관 등 2명의 정승 배출 과거에 194명 급제능성구씨(綾城具氏)는 고려말에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중앙군의 정3품,검교는 명예직)을 지내고 벽상삼한삼중대광 (壁上三韓三重大匡:문산계의 종1품은 중대광(重大匡)이고 삼중대광은 정1품이며 후에 벽상삼한의 칭호붙임)에 오른 구존유(具存裕)를 시조로 받든다.

 문헌에 따르면 시조 구존유(具存裕)는 신안주씨(新安朱氏)의 시조 주잠(朱潛)의 사위라고 한다.구존유의 장인인 주잠(朱潛)은 송나라의 한림학사(翰林學士:뛰어난 문신이며 한림원의 종2 에서 4품이고 임금의 조서를 짓는일을 맡아봄)로 있을 때,송나라가 원나라에 패망하자 서기1224년(고려 고종11)에 엽공제,주세현,진조순,유응규,주행수,조창,도성하 등 7학사(學士)와 함께 우리나라에 망명하여 전남 나주의 옛이름인 금성에 정착하였다.

 당시 몽고는 중원대륙을 평정 할 정도의 막강한 나라였으며 국호를 원나라로 개칭하고 세력을 확장 해 나갈 때다.

 한림학사(翰林學士) 였던 주잠(朱潛)은 이름을 구적덕(具積德)으로 개명하고,능주의 노정리에서 은거하다가,"삼별초의 난"으로 인해 다시 용담으로 이주 하였으나,"삼별초 난"이 정리된 후 다시 능주로 이주 하면서 2남1녀를 두었다.송나라 도학자(道學者)인 회암(晦庵) 주 희(朱熹)의 4세손인 주잠(朱潛)의 딸과 결혼한 구존유는 능성(綾城 :능주.화순현)으로 이주하여 주씨부인(朱氏夫人)과 같은 생활터전을 두게 되자 구존유는 지명(地名)을 따라 관향을 능성구씨로 하게 되었다.시조 묘는 전남 화순 한천면의 정리에 있었으나,실전(失傳:대대로 내려오던 묘지를 알수없게 됨)되었다고 한다.

 

 고려후기에 문호(門戶)를 연 능성구씨(綾城具氏)는 조선 영조대에 이르기까지 무맥(武脈)을 이어오면서 권력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능성구씨는 시조의 6대손 때인 고려 말 조선시대 초기에 판사파(判事派:현좌 賢佐).시랑중파(侍郞中派:구영양 英良).좌정승파(左政丞派:구홍鴻).판안동파(判安東派:성량成亮).도원수파(都元帥派:성로成老).낭장파(郞將派:현보賢補).감무파(監務派:현기賢器).참판파(參判派:성미成美).문천군사파(文川郡事派:원립爰立)등 원래 11파(派)였으나, 9파가 현존하고 2파는 무후이다.파별(各派別) 분포사항은 다음과 같다.


 구현좌(具賢佐)는 판사파(判事派)로 서산과 해미등지에 세거구현로(具賢老)는 전서파(典書派)로 무후(無后:자손이 없음)구영량(具英良)은 시랑중파(侍郞中派)로 화순과 보은 등지에 세거구 홍(具 鴻)은 좌정승파(左政丞派)로 성주(星州)와 대구.안동 등지에 세거구성량(具成亮)은 판안동파(判安東派)로 당진(唐津) 및 강화(江華) 등지에 세거구성로(具成老)는 도원수파(都元帥派)로 광주(廣州)와 여주(驪州) 등에 세거구현보(具賢輔)는 낭장파(郞將派)로 서천(舒川) 및 비인(庇仁) 등에 세거구현기(具賢器)는 감무파(監務派)로 당진(唐津)과 면천(沔川) 등이 세거구성미(具成美)는 참판파(參判派)로 익산(益山) 등에 세거구원립(具爰立)은 문천군사파(文川郡事派)로 전북 완주(完州)와 고산(高山) 등지에 세거이중 도원수파.판안동파.좌정승파 등 3파(派)가 조선시대에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자손이 크게 번창하여 이들 3파가 오늘날 구씨 전체인구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능성구씨 각 파(派)의 대표적인 인물을 보면 판사파(判事派)의 파조인 구현좌(具賢佐)가 고려에서 사재감 판사를 지냈으며,그의 아들 구인문은 세종 때 과거에 급제하고, 집현전 교리를 지내면서 문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눈뜬 소경으로 행세하며 낙향하여 두문불출 하고, 후에 이조판서(吏曹判書:정2품 장관)에 추증되었다.구영랑은 시랑(侍郞:4품차관)을 역임했고, 구희는 학자로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진양강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좌정승파(左政丞派)의 파조인 구홍은 고려의 충신으로 우왕 때 밀직부사(密直副事:정령을 출납하던 밀직사의 정3품)를 거쳐 우정승(右政丞:종1품 정승)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다.한편 구익수는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미리 알고 거짓으로 미친체하며 벼슬을 버리고 은거 하였는데, 세조가 즉위한 후 공조참판(參判:종2품 차관)에 임명했으나 끝까지 불취했고, 구봉령은 명종 때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선조 때 부제학(副提學:홍문관의 정3품 당상관)과 대사헌(大司憲백관을 규찰하던 사헌부의 종2품검찰총장)을 지냈으며, 당시 격렬한 동서 당쟁 속에서 중립을 지켰다고 한다.

 

출처: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Total : 403개 (page : 1/27)
번호 성씨 性氏 본관 조회
403 진주 20496
402 금천 16723
401 신천(信川) 17113
400 수안(遂安) 14139
399 개성 13807
398 장흥 15685
397 제주(濟州) 8779
396 곡부(曲阜) 16853
395 포산 16003
현재글 능성(綾城) 16584
393 안동 18109
392 봉화(奉化) 13295
391 행주(幸州) 15474
390 강릉(江陵) 4180
389 개성(開城) 3417
처음 페이지 이전 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퀵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