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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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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信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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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천강씨대동보(信川康氏大同譜)와 문헌에 의하면,중시조인 강지연(康之淵)은 고려 명종(明宗:19대왕,재위:1170~1197)때 문하시중(門下侍中:백관을 총리하던 대신으로 종1품 정승)을 지냈으며,서기1231년(고종18)몽고군의 개경침략으로 강화도로 천도(도읍을 옮김)할 때,왕을 호종하여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올라 신성(信城:신천의 옛지명)부원군(府院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관향을 신천(信川)으로 하게 되었다.

신천(信川)은 황해도 중앙부에 위치하며,단군신화에 담긴 아사달산(阿斯達山) 당장경(唐藏京)이 있었던 곳으로, 고구려때는 승산군(升山郡)이었다.고려초에는 신주(信州)로 불리웠고, 1413년(태종 13)에 지금의 신천(信川)으로 개칭되었다.


그후 강지연(康之淵)의 6세손 상산부원군(象山府院君) 강윤성(康允成)을 파조로 하는곡산파(谷山派)와 13세손 안릉부원군(安陵府院君) 강득룡(康得龍)을 파조로 하는 재령파(載寧派)로 크게 갈리었으며,조선시대에 한림학사(翰林學士왕에게 경서를 강론하던 종2품.종4품)와 전라감사(全羅監司:관찰사 종2품)를 지낸 영암공(瀛巖公) 강영(康永)을 제주강씨(濟州康氏)의 입도시조(入島始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각 파별로 역사적 인물을 보면 중시조 강지연(康之淵)의 6세손 강윤성(康允成)이 고려 충혜왕(忠惠王:제28대왕 재위:1330~1332,복위1339~1344)때 문과에 급제하고,한림학사(翰林學士:문신가운데 뛰어난 학자로 한림원.수문전등의 종2품.종4품)를 거쳐 이부시랑(吏部侍郞:정4품차관)을 지냈으며,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정2품부총리)에 올랐다.그의 딸이 이성계의 비(妃)인 신덕왕후(神德王后:방번,방석과 경순공주를 낳았음)가 되어 강윤성은 상산부원군(象山府院君:상산은 곡산의 옛지명)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곡산(谷山)으로 관향을 삼았다.재령파(載寧派)의 파조인 안정공(安靖公) 강득룡(康得龍)은 중시조 강지연의 8세손으로 고려 공민왕(恭愍王:31대왕,재위:1351~1374)때 삼사우사(三司右使:전곡의 출납과 회계를 맡아보던 정2품)를 지내다가,1392년 조선이 개국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한사람이 두임금을 섬기지 아니함)의 충절로 관악산 의상대(義湘臺)에 올라가 송경(松京:개성)을 향해 통곡하여, 이 때부터 이곳은 연주대(戀主臺)라 불리었고 태조가 그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그를 안릉부원군(安陵府院君:안릉은 재령의 옛 이름)에 봉하고 안정공(安靖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또한 영암공(瀛巖公) 강영(康永)은 신덕왕후의 사촌 오빠로 전라감사(監事:관찰사 종2품)를 지냈으며, 왕자의 난(조선 개국 초 태조의 아들 방원과 방간이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으킨 1,2차의 난)이 일어나자 피신하여, 제주에서 여생을 마쳐 제주강씨의 입도시조(入島始祖)가 되었다.

 

출처: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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